[교회개척 이야기 4]
유영업 목사
아무 연락도 없었다. 청빙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설교자라고 생각했다. 키는 좀 작지만 인상도 그리 나쁘지 않고 성품도 그런대로 봐줄만하고 경력도 뒤지지 않고... 그런 생각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없었다. 청빙은 고사하고 연락 자체가 없었다. 물론, 나를 생각하고 염려하는 분들의 전화는 많았다. 어떤 교수님은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하셔서 나를 위로하시며 나를 추천하시겠다고 하셨다. 그 때는 여유가 생겼다. 어떤 친구는 자기가 어느 교회 목사님을 잘 아니 말해보겠다고 했다. 든든했다. 어떤 목사님은 만 55세가 넘었지만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들은 나에게 징검다리가 되었다. 미래로 가는 시간 속에 멈추어 서 있는 나를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다. 한 마디 말에 힘을 얻고 한 마디 말에 한 달을 살았다. 그렇게 6개월이 흘러갔다.
과거와 미래는 전혀 달랐다. 따로 따로 나를 공격한다. 과거의 아픔이 고독의 계곡으로 밀어 넣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들을 통해 안식의 동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함께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을 걸으며 그렇게 안식을 누리기 시작했다. 미래는 과거와 달랐다. 전혀 다른 얼굴로 공격해왔다. 과거가 아픔이라면 미래는 두려움이다. 과거가 후회라면 미래는 무상이다. 지우고 싶은 과거와는 달리 미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과거는 너무 선명해서 문제였고 미래는 너무 안보여서 문제였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과거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데 미래는 더 짙은 어둠으로 나를 휘감았다. 그래도 청빙이라는 희망의 끈이 남아 있어서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잡힐 듯 내 앞에 어른거리던 청빙은 나의 꿈일 뿐이었다. 착각이었다. 미래는 냉정했다. 만 55세를 넘긴 나에게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미래는 바닥이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닥쳐 박살날 것 같은 두려움이 한 밤중에 엄습하곤 했다. 언젠가 대학 선배가 ‘두 발이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을 언급했었는데 바로 그거였다.
말씀이 필요했다. 미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씨름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항상 깨달음은 늦게 도착한다. 그러나 너무 늦는 일은 없다. 하나님의 시간을 내가 모를 뿐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은 명확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 18:28-29) 그렇다. 하나님께서 등불을 켜신다. 하나님께서 흑암을 밝히신다. 미래가 바닥이라고? 인간에게는 그렇다. 과거가 단절된 나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르다. 바닥이란 없다. 열린 공간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나는 말씀대로 살면 된다. 그렇게 할 때 미래는 열린다. 내가 두드린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열린다. 늘 설교하면서도 정작 내가 적용해야할 자리에 서면 버벅거린다. 버퍼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다가 말씀으로 뚫렸다. 우주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미래는 내가 보는 바를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순종하는 바를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바닥에 내려가니 그게 보였다. 교회 개척이라고? 그냥 하면 되겠네.
바닥에서 처음 본 교회개척은 담이었다. 막혀 있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손을 잡고 담을 뛰어넘으니 광야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걸으면 된다. 걸어가면 그게 길이 된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믿음으로 가면 되는 거다. 제주에 있는 동역자가 꿈을 가지고 시작한 “엔젤 하우스”에서 며칠 묵으며 함께 걸었다. 어느 오름이었던가, 교회를 시작하게 된다면 어떤 사명을 가지고 길을 잡을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고민했다. 나에게 주시는 사명이 있어야 교회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길을 걸으며 단어들을 쏟아내었다. 네이버메모에 입력했다.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하여 나에게 주시는 사명을 담은 개척교회의 모토가 만들어졌다. 그래 이 길로 가보자. 마음이 확정되었다.
교회개척 이야기 4 - 바닥에 떨어져야 보이는 사명 - 고신뉴스 K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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